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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채채의 블로그
[영국 서비스디자인 석사 준비] #0. 왜 석사 유학, 왜 영국, 왜 서비스디자인? 본문
이 글을 시작으로, 석사 유학을 준비했던 과정을 여러 편으로 나누어 쓰려 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기반한 것이므로 절대 정답이 아니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준비했구나' 정도로 전달되길 바란다.
0. 들어가며
이번 편은 '어떻게'가 아닌 '왜'에 대한 글이다. 유학을 왜 결심했고, 나라는 왜 영국을, 전공은 왜 서비스디자인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썼다.
개인적으로, 실제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보다 유학을 결정하기까지의 고민이 더 깊고 어려웠다. 생각해오지 않던 선택지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욕망과 가치관을 통채로 다시 들여다보고 재정의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듣는 것이 내 기준과 이유를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어서, 내가 이 결정을 하기까지의 고민과 생각의 과정을 이야기처럼, 부끄러운 부분까지도 최대한 자세히 풀어놓으려 한다. 작년 이맘때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0. 지원한 학교 및 전공
나는 25-26학기 영국의 서비스디자인 전공 석사 유학을 준비했다. 아래 세 학교에 지원했고, 현재는 세 곳 모두에서 오퍼를 받아 RCA에 진학 예정이다. 지원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의 편에서 쓸 예정이다.
- RCA(Royal College of Arts) - MA Service Design
- UAL, LCC(University of Arts London, 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s) - MA Service Design
- Loughborough University - MA User Experience and Service Design
1. 왜 석사 유학?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욕망이 먼저였고, 그 방식으로서 여러 선택지를 고민해본 뒤 유학을 선택했다. 그래서 내가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무슨 공부하러 가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살짝 민망하기도 하다 하핫..
1) 해외생활을 해야겠다!
일단, 이제쯤 해외생활을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IT 스타트업에서 3년 6개월간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했고 지금은 퇴사한 상태이다. 2024년 회고글에 좀 더 자세히 썼는데, 회사생활이 3년이 되던 즈음에 처음으로 이 회사에서의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내게는 신기하게도 해외생활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당시에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삶 전반에서 막연하게 갖고 있던 해외생활에 대한 열망이 고개를 든 것이다.
그 열망이 처음으로 구체화된 시기를 떠올려보면, 대학교 4학년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갔던 교환학생이었을 것이다. 6개월 남짓의 유럽에서의 머무름이 나는 정말 행복했고, 언젠가는 꼭 해외에서 사회인으로서 살아보리라-하는 열망을 마음에 진하게 자리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이 열망을 쉬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할 것도 감각적으로 알았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 밤 호텔에서 펑펑 울어버렸는데(..) 유럽과 부다페스트가 그리울 것 같아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내 마음이 희석될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에 돌아온 나는 보통의 일상에 또다시 빠르게 적응했다. 유럽을 그리워하면서도 당연하게 한국에서 발붙이며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했고, 취업을 했고, 회사를 다녔다. 특히 회사를 다니면서는 오히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역시 한국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점점 공고히 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해외에서의 삶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 더욱 의아했다. 2024년 회고글에도 썼지만 직전 경험과의 연결성은 전혀 없는 키워드였어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때의 기억을 '모종의 목소리가 내게 계시를 내렸다'고 말하곤 한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생각 너머로 미루어두었던 열망이, 새로이 도전할 만한 이유와 에너지가 생겼을 때 고개를 들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해외에서의 삶을 본격 꿈꾸기 시작하면서는, 이전처럼 끝을 정해두고 잠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일부로서 생활하는 경험을 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최소한 그곳에서 일하는 경험까지는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 '안정적인' 선택지로서의 유학
해외생활을 마음 먹었으니 이제 어떤 방식으로 밖으로 나갈지를 정해야 했다. 나는 크게 워킹홀리데이, 해외취업, 유학 - 이렇게 크게 세 선택지를 가지고 고민했고, 그 중 결론적으로 유학을 선택한 것은 내게는 여러 방면에서 '안정적인'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해외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도전이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방식은 최소한의 안정이 보장되는 것을 택하고 싶었다.
첫번째, 최소한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나의 사회적인 신분이 명확하게 정의된다. 교환학생을 갔을 때 느낀 건데, 타지에서 머물 때 사회적인 신변이 명확하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더 크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의 소속을 명확히 할 수 있고 최소한의 보호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불확실함 투성이일 해외에서의 경험 초반에 알게 모르게 큰 안정감을 준다. 추가로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특히 유럽권에서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사회문화적 혜택이 크다는 사실도 한 몫했다.
두번째,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을 학교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하고 싶었다.
나는 사람과의 인간적인 교류에서 얻는 활력이 크다. 그런데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서 인적 제반을 만드는 시작이 회사생활이라면, 타지에 정착하는 동안 내가 겪을 크고 작은 어려움에 힘이 될만한 인간적인 관계를 얻는 데에 더 큰 에너지가 들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일터에서도 이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지금의 내 가까운 주변을 구성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가능했던 건, 내가 사회생활 이전부터 한국에서 관계를 맺는 문법에 대한 감각을 체득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새로운 사회에서, 그 문화에 내가 덜 성숙한 상태에서도 인간적인 관계를 안전하게 맺을 수 있는 공간에서 내 곁을 만들며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고, 이런 관점에서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번째, 취업 준비에 소위 '맨땅의 헤딩'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해외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목표인데 바로 워홀이나 해외취업이 아닌 유학을 선택한 것은, 나의 도전적인 선택과 현실적인 성향을 저울질해서 타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나는 해외 취업 시장에 대한 이해가 감각이 거의 없다. 특히 내가 이어가고 싶은 PM(혹은 그에 준하는) 직무의 역량은 회사나 프로덕트가 속하고 타겟하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서 요구하는 역량과 경험의 폭이 다른 직무에 비해 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스킬, 도메인과 타겟 사용자군에 대한 이해, 그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UX에 대한 감각 - PM의 역량으로서 중심이 되는 이 모든 요소들이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지점들이다. 현지 잡마켓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에 맞춘 경험을 쌓거나 정리해서 취준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런 관점에서 현지 학교에서의 석사 학위, 코스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경험, 그리고 학교나 커넥션을 통해 주어지는 취업의 기회 등을 고려했을 때 유학이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추가로 대학원을 졸업하면 수년의 구직 비자가 주어지기도 하는데, 나라에 따라서는 워홀을 통해서도 충족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이게 주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네번째, 학위라는 정량적인 이력을 가질 수 있다. 석사 학위는 현지에서 취업을 하는 데에도 당연히 도움이 될 겠지만, 이 관점에서는 특히 혹시 내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기를 선택하더라도 그 기간을 소위 이력의 공백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안정감을 주었다.
물론 위의 현실적인 이유들만으로 유학을 선택한 건 아니다. 내가 배울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필요조건이었다. 유학이라는 선택지를 어느 정도 정한 뒤 나라와 전공을 고민한 건 맞지만, 마음을 확실히 정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배우고 싶은 전공과 가고 싶은 학교를 찾았을 때였다.
유학을 취업과 현지 정착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생각하면 그 과정이 너무 아깝고 괴로울 것이다. 현재의 나는 그 뒤의 스텝을 짐작할 뿐, 실제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과정 자체도 행복하고 활력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에야 그 다음이 어떻게 되든 후회하지 않겠다는 자신이 생겼고 비로소 이 선택을 확정할 수 있었다.
3) 가장 고민이 되었던 지점, 돈
유학을 선택하기까지 가장 고민되었던 지점은 당연히 돈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해외는 서양권이고, 서양권의 대학원 학비는 평균적으로 매우 비싸다. 그리고 삶의 근거를 옮기고 정착하는 데에 드는 비용과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큰 돈이 들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돈을 버는 것은 여러모로 제한적이다. 특히 결론적으로 내가 가장 가고 싶다고 생각한 도시와 학교를 기준으로는, 내가 3년 반동안 일하며 모은 돈을 말 그대로 다 써야만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만큼의 돈을 써서라도 가고 싶은가?'하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결론은 '그렇다'였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를 택하면서 큰 보수를 받지는 않았지만 나름 그 안에서는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돈을 모으는 구체적인 목표는 딱히 없었다. 내 기준에서는 도전이었던 스타트업에서의 시간동안 차곡차곡 저축하는 것이 내게 안정을 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돌아보니 그 안정감이란 '미래의 내가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 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나도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하고 있으니,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나도 하고 싶은 것을 돈을 이유로 포기하지 않도록, 그래서 과거의 나의 도전을 원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심리적 안정감 말이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머리가 맑아졌다. 돈을 벌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내가 돈을 들여 하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고, 그렇다면 그 돈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집을 목적으로 돈을 모았다면 집을 살 때 그 돈을 다 쓰는 게 당연하듯,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돈을 모아왔으니 그 대상이 나타난 지금 이 돈을 쓰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이었다.
+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특히 금전적 비용의 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모은 돈 다 써서라도 가기를 선택한' 맥락은 절대 나의 용기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모은 돈을 오롯이 스스로를 위해 써도 되는 환경, 돈이 부족하다면 다양한 방식의 노동을 감수할 수 있는 신체, 상시적인 지원은 어렵더라도 혹시 타지에서 큰 어려움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가족 혹은 주변, 돈을 다 쓴 채로 한국에 돌아온다고 해도 당장 머무를 수 있는 본가 - 이런 조건들 덕에 가능했던 선택이고, 이 모든 것은 내가 그저 운 좋게 가지고 있는 조건들일 뿐이다.
어떤 이유로든 그렇게 하기 어려운 삶의 맥락이나 성향의 사람들이 있고, 나의 상황과 성정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주었을 뿐이다. 혹여나 누구라도 '왜 나는 이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걸까?'하는 마음을 느끼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2. 왜 영국?
사실 해외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냥 심정적으로 끌린 곳이 유럽이고 런던이었다. 아래 내용들은 내가 후행적으로 '왜 이런 생각이 들까' 고민해보고, 의식적으로 다른 나라도 고려해보며 정리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강하게 끌리는 나라가 있다면 결국 그 곳으로 가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아직 환상에 젖어있는 것이겠지만 이것도 일단 가봐야 깨지든 말든 할 것이다 하핫..
1) Why not 미국?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왜 미국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주로 IT업계 종사자들이나 어른들(?)에게 많이 들은 질문인데, 어른들은 대부분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위 '가장 큰 물'인 미국에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 하는 이유였고, 업계 종사자들의 질문도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이 IT 비즈니스의 중심에 있고 그에 따른 유망한 학교들도 미국에 포진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인으로서 더 성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게 더 잘 맞는 삶의 공간을 찾기 위해 해외생활을 꿈꾸기 시작했기에 내 기준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이유였다. 내게 뿌리 깊이 있는 삶의 가치가 그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나란히 서 있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그런 공간을 찾는 데에 직업과 일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최우선순위는 아니었다. 특히 내 가치관에 한국의 자본주의적•신자유주의적 문화에 대한 회의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미국을 간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의 정점이자 한복판으로 가겠다는 선택이기에 내게는 오히려 가장 쉽게 제외된 선택지였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유럽으로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2) 왜 영국, 런던?
우선 나는 지금까지 런던으로 여행을 두 번 갔다. 며칠씩 머무른 여행자의 시선일 뿐이지만 갈 때마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경험이 내가 처음부터 런던에 끌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런던이 좋았던 이유들은 차치하고 내가 그곳을 삶의 근거지로 삼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들을 써보려 한다.
첫번째, 영어가 주 언어인 나라에 가고 싶었다. 나는 영어 외에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다. 물론 주 언어가 따로 있어도 영어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나라도 있지만 문화권에 깊이 녹아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편히 쓰는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런 종류의 경험을 하고 싶었고,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를 시도할 정도로 끌리는 다른 나라가 없었다.
두번째, 인종적 다양성이 보장되는 도시로 가고 싶었다. 스스로 이 사회의 일부이라고 느끼는 데에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라고 느꼈다. 타지 생활은 그 자체로 매우 외로울텐데,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주요하게 구성하는 정체성인 국적과 인종이 절대적 소수인 곳에서는 이방인의 감각이 커질 것이다. 런던은 유럽에서는 첫번째로, 세계적으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다인종 도시인데, 수치로도 그렇지만 여행을 갔을 때 그걸 더 피부로 느꼈다.
도심의 카페에 앉아 창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인종 다양성을 일부러 가늠해본 적이 있다.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곳에서, 내가 못할 것이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세번째, 영국의 석사는 대부분 1년 과정이다. 학비와 생활비가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비싸지만, 다른 국가는 대부분 2년임을 감안하면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시간이 앞당겨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비용은 더 비싸다..ㅎㅎ) 물론 짧은 기간의 단점도 분명하다. 기간이 짧은만큼 석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깊이가 얕거나, 집약적인 코스로 인해 졸업 전 취업을 준비하기가 빡빡할 수 있다. 위에 썼듯 나는 공부 자체보다는 사회인으로서의 경험을 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었기에, 1년 뒤에 구직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단점들을 상쇄했다.
네번째, 런던은 유럽 내 IT 업계 중심지이다. 나는 여전히 IT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일하고 싶고, 런던은 베를린, 파리, 암스테르담 등과 더불어 유럽 내에서 IT 업계 잡의 기회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다(그만큼 경쟁이 높지만..). 높은 우선순위의 이유는 아니었지만, 내가 가고 싶은 지역이 유럽의 중심지이고 직업적 기회의 관점으로도 그렇다는 측면에서, 불필요한 걱정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사적인 취향과 직결되어 있어 자세히 쓰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런던이 좋은 이유는 너무 많다. 축구광인 내게 천국 같은 도시이고, 정신 없는 대도시와 드넓은 자연이 한 데에서 충족되는 것이 내 니즈와 꼭 맞았고, 차갑다는 평을 받는 영국인들의 너무 기빨리지 않는 적당한 온도의 스몰토크가 좋았다. 이 크고작은 이유들 덕에 영국을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살인적인 물가, 우중충한 날씨, 쇠하고 있는 경제 등—을, 겁나더라도 일단은 부딪혀보기로 마음 먹게 해주었다.
3. 왜 서비스디자인?
사실 나라와 전공은 서로 분리하지 않고 함께 고민했다. 영국을 가야겠다고 결정한 뒤 전공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어떤 나라와 전공을 택해야 할지'하는 고민을 서로 교차하면서 했고, 서비스디자인 전공을 마음 먹으면서 영국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기도 했다.
나는 전공을 정말 크게 열어놓고 고민했다. 특정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해외생활을 꿈꾼 시작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전공을 골라야 할지 어려웠기도 하고, 삶의 지도에 썼듯 나는 일생을 '애매하게(neutral)' 살아온 사람이라 좋게 말하면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어떤 것도 뾰족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나의 정량적인 이력을 보면, 먼저 학부 때 신문방송학을 주전공•융합소프트웨어를 복수전공했고 3.5년 간 IT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다. 지원 조건만 따져보자면 문학사와 공학사가 둘 다 있어서(내가 공학사라니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 등의 인문사회 대학원과 컴공/데이터 등의 공학 대학원 모두에 지원 가능했고, 현업 경험을 가지고 HCI/UX 관련 전공에 지원할 수도 있었고, 해당 문화권의 PM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학위인 MBA도 고려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선택지를 열어두고 수달간 전공을 탐색했고, 결과적으로 서비스디자인을 선택한 건 유일하게 '내가 진짜 배우고 싶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른 전공마다도 재밌고 궁금한 것들이 있었지만, '내게 맞는 건 아니지만 이 부분은 감안해야겠지'하는 부분들이 무조건 있었는데, 서비스디자인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나는 사실 서비스디자인 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았다. 현업 경험을 살리는 측면에서도 내게 익숙한 UX/HCI의 개념 정도만 가지고 서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전 직장 동료 디자이너분이 '서비스디자인은 어떠냐, 채은님과 잘 맞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셨고, 그 분의 추천으로 RCA의 서비스디자인 코스의 program specification을 처음으로 읽었는데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Human-centric한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솔루션으로서는 채널이나 방식을 holistic하게 바라보며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터치포인트를 고려하는 것, 기획/설계의 개념을 포함하는 광의의 디자인의 개념을 가진다는 것.. 내가 언어화하기 어려웠던,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전공으로서는 어떤 모습인지 딱 맞게 정리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공부해야 할 건 이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 때 '아 유학을 가야겠다'는 마음도 확실히 정했다.
4. 고민과 판단에 도움이 된 것
1) 비슷한 결정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단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지인이나 SNS를 통해 커피챗을 요청해 유학이나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운 좋게 내 주변에는 유학 중이거나 갔다 온 사람들이 꽤 많아 그들에게 울면서 상담 신청(..)을 했고, 링크드인/커피챗 등의 서비스를 통해서 내가 고민 중인 지역/전공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들이 왜 그 결정을 했고 경험이 어떠한지를 듣는 것도 당연히 유용했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그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거쳤는지'를 아는 것이 더 유의미했다.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부분을 검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막막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스스로일 테고, 좋은 질문을 찾는 것이 간절했다. 그런 관점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
2) '유학스러운' 것이 아닐지라도 나만의 목적 찾기
석사를 하고 지금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전 동료 디자이너와 커피챗을 하며 들은 조언인데, 고민을 전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석사는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실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명확한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런 목적으로는 석사를 하면 안돼!’의 차원이 아니라, 그게 딱 “석사스러움”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목적이 있어야 돼. 누군가는 그게 Career Transition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그냥 외국 땅을 밟아 보기 위함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배움을 위함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그냥 쉼을 위한 것일 수도. 그것이 무엇이든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하겠다.
Why를 먼저, 그 뒤에 How와 What.
유학이라는 선택을 처음에 쉽사리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최종 목적이 공부가 아닌데 유학을 선택을 해도 되나?' 하는 그 불편함 때문이었다. 뭔가 정면돌파하지 않는 느낌, 쉽게 돌아가기 위해 비용을 치르는 느낌이었달까... 근데 이 분이 해주신 '석사스럽지 않아도 좋으니, 나만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결국 내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만 명확하다면 이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내 갈망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위에 쓴 이유들을 명확히 했고, 그 덕에 막연한 불안함과 불편함을 잠재울 수 있었다.
3) 그 갈망을 '정말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그렇게 내 갈망을 들여다볼 때에는 아주 밑바닥까지 스스로 솔직해져야 했는데, 그렇게 하는 데에 나에게는 아래 질문들이 도움이 되었다.
첫번째, 몇 년 뒤에도 내가 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그리 대단히 도전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내 인생에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런데다 나는 도전의식에도 유통기한이 짧아 심장이 뛸 때, 용기가 났을 때, 설렐 때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두려움이 더 커진다.
나는 한국 나이로 28살쯤 고민을 시작했는데, 딱 2년만 지나서 서른이 되었을 때 이 고민이 들면 이 선택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도 절대 늦지 않았다고 정말 진심으로, 머리로는 생각하는데도, 지금껏 한국에서 내가 갖고 살아온 강박을 생각하면 나라는 사람은 그 때가 되면 쉽사리 선택하지 못할 것 같았다. 웃기지만, 김채은이 이런 마음이 강하게 들고 추진력이 있을 때가 흔치 않으니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날마다 날이면 오는 기회가 아니다.. 느낌)
두번째, 나중에 이 선택을 한 누군가를 봤을 때 옹졸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나는 해외생활을 하는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늘 진심으로 축하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씩은 불편한 감정이 있어왔다. 질투, 부러움, 옹졸한 마음이 뒤섞여 스스로 똑바로 바라보기 괴로운 감정이었고, 그래서 이 마음을 더 강한 목소리로 덮으려고 '아 나는 한국에서 사는 게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 하며 합리화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생활과 유학을 고민하는 기간에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아 나는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한평생 내 주변의 친구들을 얼마간 옹졸한 마음으로 바라보겠구나'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니 혹시나 내 해외생활의 결과가 사회적으로는 '실패'에 가깝더라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마무리하며
앞서 썼듯 유학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내게는 가장 지난하고 어려웠기에, 이번 글은 더욱 자세하고 솔직하게 쓰려 했다. '이런 것까지 써도 되나' 싶은 부끄러운 부분들도 용기 내어 담았다. 다시 한 번, 이 글로 시작하는 모든 편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여기에는 어떤 정답도 없다고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해외생활도, 유학도 누구에게나 큰 도전일 것이기에,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고민과 선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는다면 기쁘겠다!
* 다음 글에는 지원과정의 개괄과 타임라인, 그리고 지원할 학교를 어떻게 추렸는지에 대해 쓸 예정입니다. 혹시 이 글과 관련해서 질문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을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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