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
| 6 | 7 | 8 | 9 | 10 | 11 | 12 |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
- 사이드프로젝트
- 서비스디자인포트폴리오
- 영국석사
- 노코드툴
- 사람에 대한 이해
- 노코드
- 글또
- 글또10기
- 서비스디자인
- 비사이드
- 프로덕트 매니저
- 또글또글
- 사용자에 대한 이해
- qa r&r
- 포텐데이
- PM
- 테블리
- 디자인포트폴리오
- 영국유학
- videotask
- product manager
- webbuilder
- 웹빌더
- nocode
- 상자 밖에 있는 사람
- 영국학생비자
- QA 프로세스
- 포텐데이412
- rcaservicedesign
- 동료에 대한 이해
- Today
- Total
움채채의 블로그
진짜 대박 늦은 2025 회고 본문
1월에 쓰기 시작해 2월말에 발행하는 게으른 회고입니다.
중간중간 타이밍이 요상해보이더라도 오오 게을렀구나.. 하고 넘어가주시길..
연말연초는 모름지기 조금은 덜 생산적이되 더 많이 생각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정반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작년만큼 밀도 있고 진득한 회고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특히 해외에 나와 있다보니 한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회고모임을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포모를 오게 하더라😏 그래서 나름대로 학교 친구들과,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지인들과 회고를 하고 있지만, 영국에 나오기 직전에 가장 내가 깊게 몸담았던 집단(=글또)이 워낙 회친자들 투성이였기에 역체감을 단단히 하는 중이다.
하지만 역시나 올 연말연초에도 우후죽순 올라오는 회고글들 덕에 자극받아 이 드래프트를 열기라도 했으니 역시 감사할 것들 뿐이다!
요 일년을 대체 어떻게 회고할 수 있을랑가 - 막막함(positive)이 앞서는 그런 한 해이다.
더 잘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회고에서 제일 중요한 건 회고를 하는 것이라는 성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냥 일단 생각나는 대로, 시간 순서대로! 크게는 한국에서와 영국에서의 시간을 나누어 따라가면서 기억을 짚어보려 한다.
2025 돌아보기
한국에서 (~8월 중순)
#1 유학 준비
재작년 12월부터 작년 1월 중순까지 학교들에 지원했고, 1월 말즈음에는 어떤 학교를 갈지 정해졌고, 5월에는 아이엘츠 시험을 보고, 6월에는 비자를 받고, 7월에는 본격 출국 준비를 했다. 이 모든 게 너무 전생 같은데 다 작년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새삼스럽지만, 벌써 이렇게나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그 때 유학 준비 과정을 기록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기록은 소중해..
수많은 챌린지들에 휩싸여 까맣게 잊을 때가 많은데, 지금 나는 과거의 내가 이렇게나 신경을 쏟아 준비하던 그 대상에 도달해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어려움투성이인 지금의 생활에 도달하기 위해 불과 몇달 전까지의 스스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문득문득이라도 떠올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시간들의 가치를 더 잘 알아보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
#2 사람들 만나기 - 새로운 사람들도, 원래의 소중한 인연들도
사실 위에 쓴, 유학과 출국을 위해 명시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보다,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썼다. 올해 가장 잘한 일들 중 하나이다.
기존의 소중한 관계들과의 만남도, 재작년 여름 퇴사 이후로 쭉 열심이었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상반기까지 많이 이어졌다. 특히 글또를 통해서 커피챗을 많이 했고,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과는 더 자주 만나면서 일상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주변의 관계와 사람들이 얼마나 큰 가치인지를 분명히 하게 되었고,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또 나는 원체 혼자 고민할 때보다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할 때에 생각이 정리되고 선명해지는 사람이라서, 큰 도전을 앞두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이후의 내게 도움이 될, 내 속의 여러가지를 정의해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런던에서의 생활 5달차, 이 시간의 힘을 정말 크게 느낀다.
소중한 사람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오니 이 곳에서의 시간에 더 발붙이고 충실할 수 있고, 내가 이 선택을 한 이유와 두려움/걱정- 등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을 충분히 정리하고 정의하고 온 덕에 매일매일 찾아오는 힘든 일들에도 비교적 의연할 수 있다. 사실 의연은 뻥이고.. 너무 깊게까지 힘들지 않을 수 있다.
이 생활에서 매일매일 새롭게 찾아오는 대부분의 고민과 걱정들이 앞선 이 시간동안 다 미리 걱정하고 고민한 것들이고, 그에 대한 해답을 다 찾아오진 못했어도 '그런 어려움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선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만은 정리해왔기 때문에 동굴까지 걸어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당장 눈앞의 것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도 바쁠 시간에, 이렇게 근본적인 고민에 대한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은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크고 작게 다가오는 괴로움들 앞에서도 크게 쓰러지는 대신 견딜만한 흔들림이라 여기며 시간을 보내는 데에 집중할 수 있다.

#3 가까운 사람들과 충분히 시간 보내기
위에서 파생된 것이긴 하지만.. 특히 나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연인과 시간을 이전보다 많이 보내려 노력했다.
2024 회고에 퇴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썼는데,
단순히 학교에 지원하고 유학을 준비하는 것뿐 아니라, 수년간 일에 에너지를 쏟으면서 이곳저곳 성치 않은 몸과 마음을 돌보아 정상궤도로 돌려두는 것, 해외에 오래 나간다면 그간 신경쓰지 못할 가족과 주변에 애정을 나누는 것 등.. 이제는 진짜 결정한 다음 스텝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건 회사에 있지 않았다.
큰 도전을 앞두고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위해 퇴사를 한 것은 아주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현명했다 움채채 !
돌아보면 회사를 다니던 3년보다, 절반은 영국에 나와서 함께하지 못한 작년 한해동안 가족과 연인과 보낸 시간이, 질과 양의 모든 측면에서 더 훌륭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오랜 시간동안 못 볼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함께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더 밀도 높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실천하며 보낼 수 있었다.
짧은 국내 여행도 여러 번 가고, 쉬는 날이 생기면 각자 방에 있는 대신 괜히 밖에 나가서 식사도 하고, 일부러 시간을 잡아 가족외식도 여러 번 하고, 사진도 많이 남기고.. 새로운 국면을 눈앞에 두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들과 연인과 대화도 많이 했다. 나의 도전에 의해 여러 형태로 큰 영향을 받을 가까운 사람들이 이 도전에 대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응원하고 바라보는지 듣고 이해할 수 있었고, 나의 이유와 동기와 불안함과 기대와 설렘과 두려움과.. - 암튼 내 머릿속의 복잡한 조각들도 공유할 수 있었다. 이 시간 덕에 불안한 와중에도, 수틀리면 빠꾸할 수 있는 방파제를 속깊은 곳에 둔 기분으로 출국할 수 있기도 했다. 그 덕에 나의 도전도 이런 주변의 지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며 자만하지 않을 수 있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노력했음에도 함께한 시간들이 너무 부족하고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출국이 다가올수록 혼자(혹은 대놓고) 울어버리게 되는 순간들도 많았지만, 이렇게라도 가까운 주변에 충실한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에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챱-하고 발 붙이고 내 삶 꾸려나가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 카페 일
2024 회고에도 썼는데, 퇴사를 하고 유학을 오기 전까지 약 1년동안 엄마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알바를 했다. 25년에 들어 여러 이벤트가 겹쳐 카페가 많이 바빠졌고 이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도 많이 해야 했다.
출국을 앞두고 정신 없어질 때까지도 무리하며 카페 출근을 계속하려 했던 것은, 내가 출국하고 나면 더 쉬지 못할 엄마를 생각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나는 이 일을 즐겼던 게 분명하다. 매일 퇴근하고 나면 땀범벅이고 진이 빠졌지만, 이전 글에도 썼듯 사람을 대하는 일과 육체노동이 주는 특유의 활력이 기분 좋고, 즉각적인 가치를 줄 수 있는 일에서의 산뜻함이 좋고, PM으로서와 카페 알바로서의 능력이 통하는 것이 많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알게 모르게 이 일에서 얻은 배움과 경험들이 많다. 좀 웃기지만, '영국 가서 돈이 부족해도, 졸업 후에 취업이 잘 안 되더라도 카페에서 일하면 되지!' 하는 요상한 용기를 얻기도 했다 😏
#4 멘토링 / 부트캠프 알바
출국 전까지 감사하게도 단기로 알바할 수 있는 기회들이 몇 번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부분이 PM으로의 취업/이직을 준비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부트캠프에서의 활동들이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가르침을 주는 것은 내 일을 잘해내는 것과는 역시 또다른 영역이다.
시장에 몇년 빠르게 나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멘토"라는 이름이 달리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함께하고 나의 관점에서 조언을 주는 이런 활동이 꽤 즐겁고 내가 잘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특히 그 즈음에 내 지난 경험을 깊이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 오히려 일에 푹 빠져 있던 때보다 이런 활동에는 더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험을 한발짝 떨어져서 돌아보고 또 스스로의 세상 바깥의 것들도 둘러본 시간이, 다른 이들의 고민을 함께할 때에는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런 활동들이 나에게는 "멘토링"보다는 교육생분들이 만들고 있는 프로덕트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는 과정처럼 느껴졌고, 내가 일을 하면서 길러온 관점을 다른 사람들의 프로젝트에 녹여 설명해서 전달하는 경험이 즐거웠다. 눈을 빛내며 미래를 그리는 분들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취업준비할 때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기획/디자인 부트캠프가 다양해지고 그만큼 교육생들의 방법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을 보면서, 취업시장의 정말 높은 경쟁을 체감하기도 했다. 내가 취업준비를 할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PM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힘들었다면, 역시 정보가 많다는 것에는 또다른 어려움이 뒤따른 다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몇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이 일을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멘토링을 할 때 업계에 대한 막연한 무형의 동경을 줄여주며 최대한 교육생분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우려 노력했다.
#5 잡동사니(?) 출국준비 - 운전면허, PT, 영어수업, 라식, 건강검진, 할머니댁 갖다오기


출국을 핑계로 이전까지 계속 미뤄오던 것들을 하기도 했다. 사실 유학이나 출국과 크으게 상관 없는 것들인데, 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들이 많더라. 이런 효과를 위해서라도 삶에는 꾸준한 변화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영국 가면 다른 운동들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 헬스 기본기라도 배우자며 PT를 꾸역꾸역 열번 한 PT - 영국 와서 헬스장 한번도 안 갔다 하하
- 독학하겠다는 객기로 몇번 떨어졌는지도 기억 안나는(...), 결국은 출국 2주전쯤에 겨우 따낸 운전면허 - 영국에서 오로지 신분증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 무서워서 미루고 고민하다가, 영국은 안경이 비싸다는 이야기에 안경 안 깨먹을 자신이 없어서 출국 두달 전에 버저비터로 한 스마일라식 - 건조한 영국 공기에 매일 눈이 찢어질듯 하지만 출국 전 가장 잘한 일이다!
- 안 어울릴까봐 늘 맘에만 넣어두다가 영국 간다고 괜히 용기 생겨서 출국 전 급히 한 히피펌 - 이전 머리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머리가 되어 부렀다
- 국가 건강검진, 내과, 안과, 치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그 덕에 썩은 이를 발견해 신경치료도 하고 필요한 상비약들이나 진단증도 받아올 수 있었다 - 영국 의료는 내가 무서워했던 것만큼 무시무시하지는 않지만 그저 믿고만 있기는 불안한 게 맞고, 물가는 더 그렇다. 다음에 한국 가도 제일 먼저 할 일은 병원 돌기가 아닐까...
- 작년 설에 눈이 많이 와서 할머니댁을 못 갔는데, 추석에도 그 다음 설에도 못 뵐 것이 뻔하니 출국 한 주전 급히 다녀왔다. 영국에 나오니 어른들의 건강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다음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었으면..!
런던에서 (8월 중순~)
#1 집 구하고 정리하기
돌아보기만 해도 아득한 집 구하기... 나는 대학생활도 직장생활도 자취 없이 본가에서 지냈다. 고등학교 3년 기숙생활과 교환학생 때의 플랫(한국의 쉐어하우스) 생활을 해보았고 스스로 생활에 있어서는 무던한 편인 것을 알고 있어 공동생활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는데, 집을 구하는 일은 다른 이야기였다. 교환학생 때에는 한국에서 집을 미리 계약하고 난 뒤에 출국하기도 했고 영국에 비해 물가가 매우 싼 헝가리였어서 부담도 적었다. 또 6개월 뒤면 끝날 것이 분명한 것이기도 했고, 또 벌써 6년 전이니 지금의 나보다 견딜 수 있는 것(?) 도 많았을 것이다.
어떤 동네가 어디에 있고 어떤 분위기인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영국에 가장 더웠던 8월 초에 서울보다도 두어배는 더 큰 런던의 동서남북을 요령 없이 돌아다니며 뷰잉을 했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처참한 컨디션의 집들이 정말 많았고, 입국한 직후 며칠은 그 절망감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그러다 지금 방을 만났고, '이거다 싶으면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어서 오래 고민하는 대신 계약을 했다.
지금은 너무 편안한 내 공간 같은 집이 되었지만, 처음 이사 들어왔을 때에는 짧은 뷰잉 때에는 보기 어려웠던 여러가지 위생상태 등등 때문에 마음이 착 가라앉는 순간들이 많았다. 캐리어 두개와 배낭, 크로스백까지 낑낑대며 들고 들어왔던 바로 첫날, 가구들의 컨디션, 화장실 및 부엌등 공용공간의 청소 상태 등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이런 절망감에 휩싸여 마음이 착 가라앉았던 것이 기억난다. 돌아보면 - 입주한 직후에는, 이후에 문제될 것을 대비해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나'를 집중해서 둘러보기 때문에 더 안 좋은 점들에 매몰되기 쉬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렇게 착 가라앉아 하소연하던 나에게 애인이 영상통화 너머로 해준 말이, 올해의 한마디가 되었다.
"그런데 네가 액션해서 바뀔 수 있는 문제라면 개꿀인 거 아니야?"

내가 이 집에 빠르게 정을 붙이고 또 런던에서의 생활 전반에 빠르게 발 붙일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 문장이다. 해외생활을 시작하고 유학생활을 하면서 부딪힐 문제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고 그 중에서는 내가 손쓰기도 어려운 문제도 많을 텐데, 그 중에서 내가 액션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너무 개꿀인 것 아니냐는 말.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들었다.
아 그러네 청소하면 되는 거잔아;; 청소만 하면 해결된다니 개꿀이잔아;;



그 덕에 정신을 차리곤 빠르게 "내 방에 정붙이기"가 가능하도록 노력했다. 천천히 하나씩 채워나가자- 아니고, 빠르게 이 곳에서 내가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아직 지역에 대한 감각이 없는 탓에 요령없이 먼 거리로 하루에 중고거래를 세네번씩 다니고 온갖 잡화점에 발품 팔러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채워넣었다. 나중에 이사할 것을 생각해서 짐을 늘리지 않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에게는 우선 빠르게 '이곳을 애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두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런던에 오고 싶었던 이유들이, 코어가 아닌 것들에서의 괴로움 때문에 흐릿해지지 않도록, 이곳에 대해 들고온 애정이 적어도 '애꿎게' 식지는 않도록 하는 것.
그 덕에 이사한지 열흘도 안 되었을 때에 벌써 어 내 방 같다-고 느껴지는 내 방다운 방을 만들 수 있었다. 오히려 입학 전까지 2주나 남은 게 무료하게 느껴질 만큼 !


방과 집에 정이 아무리 붙고 편안해져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들은 당연히 많다. 특히 플랫메이트와 공유하는 공간에는 (분명 한국에서는 전혀 높지 않았던) 나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일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액션-개꿀' 메타를 떠올리면 아주 마음이 편해진다. 세상에 내가 청소하고 치우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다니 너무 감사하다!!!!!! 라고 생각하기!
#2 개강, 영국에서의 석사생활 시작

일을 하다 학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혹은 그보다 더 새로웠다. 입학 초 특유의 활기 속에서, 나는 어떤 종류의 활력을 가지는 사람으로 여기에서 기능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곤 했다.내 손으로 선택해서 온 전공이지만 서비스디자인이 대체 어떤 건지, 디자인이라는 게 내가 할 수는 있는 영역이 맞는 건지 - 하는 학생으로서의 고민부터, 정말 친구라 느끼는 친구들을 만들 수 있을까, 이곳에서의 나는 어떤 사람으로서 인식될까, 주변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있을까 - 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까지.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가 여전히 생생하고, 또 이 시간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흔치 않은 소중한 시간임을 더없이 잘 이해한 채로 왔기 때문에, 이 1년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시간의 가치를 잊지 않으면서 더 현명하게, 지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조급하지 않으면서도 이 시간에서 누릴 수 있는 배움들을 충분히 얻어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런 생각과 고민 속에서 학기의 완전 초반에는, '내가 제일 모른다'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며 스스로 충분한 사유가 가능해질 때를 조심스럽게 기다렸던 것 기억이다.
#3 파트타임 시작
미국의 AI 스타트업에서 QA/Support 직무로 리모트 파트타임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학교생활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테크 중에서도 테크테크한 분야에다 처음으로 영어로 일하는 것, 처음 경험하는 직무, 새로운 조직문화, 학교와 병행하는 것까지 - 시작할 땐 너무 무서웠지만(사실 여전히 매일매일 무섭다🫠) 당연하게도 내게 너무 소중한 경험이고 기회라는 것을 잘 알기에 매일매일 미끄러지면서 일을 시작했다. 야생과 같은 미국의 노동문화 속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하려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다.

말로만 듣던 미국 회사의 문화는 어떤지, 빠르게 성장하는 실리콘밸리 회사는 어떻게 일하는지, 영어로 일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어떤 종류의 어려움인지 - 배우는 것이 정말 많다. 학교와 병행하느라 시간 투자를 많이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때가 많은데, 또 한 편으로는 그래서 너무 강도 높고 경쟁이 심한 새로운 환경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학생으로서의 자아를 지키면서 어렵게나마 밸런스를 지키면서 일할 수 있는 것도 같다. 안 그래도 챌린징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조직문화와 환경을, 파트타임이기 때문에 조금은 가볍게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다.
또 학교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일을 즐겼던 사람으로서, 또 졸업 이후에는 업계에 돌아가고픈 사람으로서, 직무는 다를지라도 일에 대한 감각과 업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해를 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아니려고 해도 속깊은 곳에는 경력이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그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도 하다. 오히려 그래서 학교에서는 '가장 학교다운 것'들에 대한 도전에 몸과 마음을 던질 수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화 약세와 파운드 강세가 미친 요즘, 큰 돈이 아니더라도 달러로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안정감을 준다. 남들과 공용공간을 공유하는 작은 방 하나에 이백만원 남짓인 미친 물가의 런던에서 돈 생각은 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곳에서만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 앞에서도 돈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 작은 일자리 덕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잘리지 않게.... 이 동아줄의 가장 끝 가장자리에서라도 대롱대롱 달려... 무사히 졸업까지 갈 수 있길..^_^..
#4 Unit 1 프로젝트
벌써 기억이 흐릿해진 첫번째 프로젝트. 첫 과제인만큼 깊이 있는 주제가 아니기도 했고, 팀원도 랜덤으로 정해져서 주어졌다.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들이 많았지만, 의식적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이 첫 한달을 스스로의 테스트베드이자 새로운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적응기로 삼고자 했다. 결과물에 대한 욕심이나 디자인에 대한 양질의 배움보다는 협업하는 과정을 파악하고 배우는 것을 주 목적으로 두었다.
팀원들의 적극성이나 퍼포먼스를 그저 아쉬워하기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역량의 유효함을 테스트하고 확인하는 시간으로 치환해 쓰려 했다. 또 이후에 팀을 직접 구성할 기회가 생겼을 때 스스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할지, 나는 어떤 환경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활력을 느끼는 지에 대해서 인지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5 Unit 2 프로젝트


할말이 너무 많은, 내게 게임체인저였던 두번째 프로젝트. 이 두 달에 대한 회고만으로도 다섯 편의 글을 쓸 수 있다. 뭐라 요약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이미 다이어리의 수많은 종이 속에 남겨놨으니까 그냥 이 기억이 이렇게나 나에게 임팩트가 있었구나 - 하는 또다른 증명으로서 줄줄이 감상만을 남겨보기..
서비스디자인이 도통 뭔지 모르겠는 채로 학교에 지원할 때(아직도 잘 모름), 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고 썼다. 퇴사를 결정하고 이후에 스스로를 회고하며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사람이라고, 런던에 가겠다는 다짐을 할 때즈음부터 계속 생각하고 또 느껴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정말 '사람을 위해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산적인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를 처음 느낄 수 있었다. 유학을 마음 먹고 준비할 때 생각했던,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 - 언어화하지 못했던, 아직도 사실 무엇이라 딱 표현하기 힘든 - 그 배움을 정확히 얻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매일매일 뇌가 땡땡해지는 기분으로 쓰러지듯 잠에 들었고, 분에 찬 배움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며 기뻤고, 감탄사와 '감각'으로서 기억이 더 선명한 시간이다. 이 때의 감각을 내가 오래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잘하고 싶어서 긴장되어 심장이 조였다가 기분 좋게 이완되는 감각. 스스로 더없이 몰입하고 있음을 느끼고, 거기에서 효용을 경험하고 또 쓸모를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


여전히 배우고 채우고 나갈 것들이 많지만, 스스로 '아 나 지금 컸구나' 하고 돌아보게 되는 삶에서의 몇 안 되는 순간을 느낀 몇달이었다. 우연이 쌓여 이 주제를, 이 사람들을, 이 팀을, 이 튜터를 만났으니, 역시나 꾸준히 나를 우연에 떨어트려 두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싶다.
#6 새로운, 소중한 인연들
유학 준비 기록의 첫번째 글에서, 해외에 나가는 다양한 경로 중 유학을 선택한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 '새로운 관계들을 안전한 공간에서 만들기 위함'을 꼽았다. 그만큼 나는 관계와 사람에서 얻는 힘이 큰 사람이고 그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으면서도 '내가 이곳에서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로 출국 비행기를 탔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자신 있게 친구라 부를 여러 인연들이 생겼다. 오늘 하루의 시시콜콜한 것부터 가장 속깊은 이야기까지 공유할 수 있는 - 나의 준거집단이 되어준 친구들, 수달동안 같은 팀에서 매일의 힘듦과 충만함을 함께하며 동료이자 친구가 된 사람들, 대단한 접점 없이도 자연스레 서로를 알아보고 가까워진 친구들까지. 수없이 들었어도 직접 경험하지 못해 믿을 수 없었던 '사람 사는 것과 인간관계는 어디나 똑같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준 인연들이다.



또 이곳에서의 내 삶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한국에서 이어져 온 인연들이다. 매일매일이 처음이고 자기의심이 정말 다양한 구석에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생활 속에서, 한국에서 제 몫은 하고 살던 때의 내 모습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이 닥칠 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새로운 인연들과는 또다른 고맥락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은 내게 꽤나 큰 안정감을 준다. 스스로 한 것 없이 이런 인연들을 주변에 뒀으니, 이건 정말 오로지 행운이고 권력이다.



내가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인복이라는 믿음이, 아직까지는 이곳에서도 유효하다!
#6 '살아가기' - 월세 내고 장 보고 밥 해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옷사입고 아프고 병원가고...



사실 이곳에서는 '생활' 자체가 챌린지이다.
미친듯이 널뛰는 파운드 환율에 전세계에서 손꼽히게 비싼 런던의 집값을 월마다 이백만원씩 내는 것, 말도 안되는 외식물가 덕에 매일 싸다녀야 하는 도시락, 위생관념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들과 공유하는 공용공간, 아플 때 병원을 바로 갈 수 없어 나에게 안 들지도 모르는 왕비싼 약을 사먹다가 버티다 못해 병원을 갔다가도 내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나오는 일, 한국과는 다른 치안 때문에 늘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휴대폰을 꼭 쥐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몇 번씩이나 당한 도난..
학교생활과 일이라는 생산적인 영역 외에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일상적인 챌린지가 여전히 너무 많다. 해외생활의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하는 반년이었다.
해외생활은 화려하지 않고, 따지자면 화려함을 뺀 모든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깨짐이 반복되는 시간이 주는 것이 있다.
이런 것도 경험해봤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냐 하는 근거 없는 깡, 온갖 사건들에 면역이 되어(혹은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라도) 웬만한 일에는 잠깐 울적했다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회복탄력성 같은 것들. 스스로를 대견해 해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일상이고, 이 시간을 '버티는' 감각으로만 채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웃어 넘기는 힘이 길러진다. 그걸 직접 경험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힘들면서도 사실은 즐겁다.
#7 유럽이라, 영국이라, 런던이라 할 수 있는 경험들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매일매일 처음인 구석들이 고개를 들며 정신이 없는 하루하루이지만, 그말인즉슨 이곳에서의 삶은 내게 여전히 비일상의 범주에 속하고, 여행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상이 고될 땐, 한국에서의 내가 유럽과 런던에 오고 싶었던 이유를 되새길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활력을 찾고 위로 받는다!



- 평균 한 달에 한 번은 축구를 보러 가고 있다.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11월에는 일부러 두번 보러 갔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별다른 취미생활이 없고 모든 면에서 허리띠 졸라매며 파트타임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주는 거의 유일한 비싼 취미라 생각하며 treat해주고 있다. 그마저도 한국에서 오로지 축구를 보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고 십수시간을 날아 왔던 때를 생각하면 아유 너무 싸다 .. 너무 권력이다 .. 싶어서 주저없이 티켓을 끊곤 한다.
- 두번의 여행에서 내가 런던을 사랑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정신 없는 도심 속에서도 타협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그리너리들이었다. 서울이었다면 국립공원 딱지가 붙었을 만한 크기의 광활한 공원들부터 집 앞의 작고 아기자기한 녹지까지.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런던의 장점을 십분 누리려 마음이 답답할 때면 공원을 자주 찾았다.
- 한국에서 전시나 박물관, 미술관을 제 발로 찾아간 건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만큼 예술적 소양이 없어왔는데(?) 런던이라는 도시와 예대라는 공간이 나를 자연스레 이런 자극에 노출시킨다. 영국은 자신의 약탈의 역사를 반성하며(?)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무료로 열려 있고, 세계 각지의 예술인들이 모이는 곳인만큼 정말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사실 이런 곳들을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학교 안에서도 학생들이 주도하는 워크샵이나 전시, 프로그램 등이 하루에도 몇 개씩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스스로 예대생이라는 사실은 생각할 때마다 민망하고 예술을 어떻게 소화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도 아직 모르겠지만, 예술인들이 어떤 동력과 생각으로 예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내겐 큰 걸음이다.
- 그 외에도 유럽 감성 가득한 카페나 동네, 한국에서는 갈 생각조차도 안했던 파티들, 빈티지 마켓 등등.. 유럽이라, 영국이라, 런던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하려 한다.
#7 어떤 형식으로든 큰 도움이 되는 회고
퇴사를 하고 유학을 오기 전의 1년 동안 회고의 힘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매일이나 매주 꾸준히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속하려 노력했다. 특히 매일 달라지는 상황에 루틴이랄 게 없고, 하루에도 벌어지는 일이 수많은 이 생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회고가 큰 도움이 된다.
벌써 함께한지 2년이 다되어가는 전직장 동료들과의 주간회고도 여전히 하는 중이고, 이곳에서 친해진 친구들에게 내가 먼저 제안해서 회고모임을 하고 있기도 하다.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중반 즈음에 팀원들에게 제안해서 회고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모임을 하지 않더라도 노트에 생각이나 하루를 기록할 때도 아주 많아졌다. 내가 지나가는 중인 이 시간이 너무 짧고 (비싸고)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거나 답답할 때마다 노트를 열고 생각과 감정을 다 쓰고 쏟아내버리려 한다. 아무리 구조 없이 막 쓰는 글이라도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감정이 그럴만한 것인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언어화하게 된다.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한국에서의 시간을 쓰는 데에는 캘린더와 갤러리를 계속 들쳐봐야 했다. 쓰고 나니 모든 사건/시간들이 결국에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로 귀결되는구나. 혹은 그렇게 영향을 주는 사건들만 뽑게 되는 것이거나.
런던에서의 기록이 훨씬 자세한 것은.. 최근이어서도 맞고 또 너무 큰 일들이라서도 맞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보다 그 때 그 때의 경험을 충분히 회고하고 기록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에 연말회고 핑계삼아 몰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두자 !
2026년은요
2024년 회고글에도 붙여넣었던, 25년을 시작할 때의 다짐은 이랬다.

사실 돌아보면, 작년만큼 이 다짐들을 스스로 잘 주지해온 해가 있었나 싶다! 돋보기를 들이밀며 하나하나 따지자면 끝없겠지만, 한발짝 떨어져 보면 대략적으로는 아주 후하게 쳐줄만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날 했던 연말결산 문답에서도, 스스로에게 꽤 후한 말들을 한껏 해줄 수 있었다. 나 되게되게 고생했고 장하다!
올해를 요약한 문장?
가치 있는 괴로움으로 잘 채웠고, 그 사실을 알면서 시간을 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다 !
2025년의 나에게 칭찬
미래의 내가 올해의 나에게 아주 크게 빚졌다. 기특하고 장하다!
2026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뭘 더 말해주겠니 .. 알아서 잘 할듯
벅차도록 큰 변화가 일었던 25년은 지나간지 벌써 두달이 지났다. 나는 이제 다시 개강한 유학생이고, 다시금 정신 없는 학교생활(+ 런던생활 +파트타임 +이것저것 ...)을 이어나가는 와중이다.
그렇게 26년의 신정과 구정은 다 지나버렸지만 한국인의 마지막 새해인 삼일절이 안 지났으니.. 인스타 피드에도 올렸던 올초의 새해 다짐을 다시 한번 외쳐보자면!

2026년에는,
사람과 과정에 대한 믿음이 계속 허용되는 해이길
매일은 후회투성이이더라도 대략 퉁치면 봐줄만한 쪽을 선택하는, 돋보기를 기꺼이 내려놓는 해이길
버티기보다는 지금을 충분히 누리는 마음으로 시간을 나길
그게 잘 안 될 때에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 27년 1월의 나를 상상해보길!
올해 나는 학교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하고,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할 것이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그 다음이 또 새로 다가올 것이다.
쓰기만 해도 굵직하게 다가오는 이 일들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조여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저 마지막 줄을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 결과가 어디를 향하든 지금의 내 삶은 불과 한 해만 지나도 그리워질 것이 분명한, 그 과정을 즐기고 누리지 않기에는 아까운 시간이라는 것을 종종 떠올리기!
아주 많이 늦은 회고의 발행을 핑계로 또 한번 마음을 다잡고 간다 - 남은 열 달의 올해도 레쭈고 !

'글을써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눈물의 글또 회고 - 글 쓰러 왔을 뿐인데, 이것 다 뭐에요?(positive) (14) | 2025.03.30 |
|---|---|
| 뒤늦은 2024 회고 : 💥한 해 고생많았고 사랑해!💥 (1) | 2025.02.02 |
| 첫 사이드 프로젝트 출시에 부쳐 (feat. 테블리, 2024 테크블로그 리포트, 포텐데이 412) (1) | 2025.01.05 |
| 스타트업의 QA 프로세스 개선 (1) : 우리 모두가 QA입니다😉 (2) | 2024.11.24 |
| 글쓰기가 내게 가벼운 것이 되길 (1) | 2024.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