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글쓰기
- 동료에 대한 이해
- product manager
- 포텐데이412
- QA 프로세스
- 상자 밖에 있는 사람
- 사람에 대한 이해
- 사이드프로젝트
- 테블리
- 포텐데이
- 웹빌더
- QA
- PM
- SaaS
- 또글또글
- webbuilder
- 프로덕트매니저
- 비사이드
- 글또
- 사용자에 대한 이해
- 노코드툴
- 프로덕트 매니저
- 노코드
- qa r&r
- nocode
- 스타트업
- Today
- Total
움채채의 블로그
글쓰기가 내게 가벼운 것이 되길 본문
잘하고 싶어서 더 욕심내지 못한 것
글쓰기는 늘 내게 잘하고 싶은 것이었다.
왜인지 항상 내 주변에는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스스로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출중한 글을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은 그들 덕에 알았다. 모름지기 나는 애매한 사람이기에(삶의 지도 참고😌) 나의 글도 그러했다.
힘빼고 스윽스윽 써낸 글에서도 훌륭함이 묻어나오는 주변을 보며, 어떤 종류의 글도 조금이라도 만족스럽게 쓰려면 수 시간, 수 일이 걸리는 사람으로서 명시적인 필요 바깥의 영역에서 펜을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잘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욕심을 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때까지의 나는 명시적인 필요 외의 글을 쓰지 않았다.
한 편으로 그래도 괜찮았던 이유는, 그 주어진 필요 안에서도 자아를 담아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관심 있는 인문학·사회학 수업들을 골라 들으면서, 학교 안에서 다양한 글을 읽고 썼다. 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자아를 건드리는 글을 쓸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좋은 글을 썼는지와는 별개로, 학교를 매개로 주어지는 텍스트를 읽고 쓰기만 해도 인격적으로, 또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학교 밖에서 읽고 쓰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사회학적 감각은 더 무뎌지는지, 꽤 잘 갈아두었던 나의 인격적인 칼날이 뭉툭해지는 것을 매일 느꼈다. 일적으로는 뜨겁게 성장하면서 인간으로서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차가운 기분이 들었다.
그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산적인 성장을 최우선순위로 두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좋은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끈도 놓지 않기 위함이었다. 부끄럽지만 왜 사람들이 책을 읽는지를 그 때에서야 깊이 이해했다. 책은 나의 인간성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전까지 독서에 취미가 없었던 것도, 명시적인 필요 안에서 자아와 연결된 텍스트를 읽는 경험이 충족되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필요 외'의 글도 아주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노트에 필사를 했고 휴대폰으로 책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남겼다.
필사는 책 속 문장의 표현 혹은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했다. 필사는 항상 종이에 했는데, 그렇게 해야만 그 문장을 깊게 소화해내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결국 나도 그들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짧은 감상글은 온라인 독서인증 모임에 올리기 위해 쓰기 시작했는데, 모임을 나오고 나서도 책을 읽을 때마다 아주 짧게라도 썼다. 책에 관한 글이었지만, 내가 골라 읽은 책에 대해 나만의 감명을 담은 것이기에 나에 대한 글쓰기이기도 했다. 학교의 매개 없이 자유의지로 내 자아를 담아 쓴 첫 종류의 글이었다. 한두 문단 남짓이었지만 감상을 쓸 때에는 대학에서 쓰던 글처럼 나만의 작은 공론장이 휴대폰 위에 펼쳐지는 기분이었고, 놓쳐가던 인격적인 성장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기분이었다.
이렇듯 독서와 그에 말미암은 글쓰기는 나의 숨쉴 구멍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과로가 일상의 평균이었던 직장생활동안 우선순위가 가장 쉽게 내려가는 취미이기도 했다. 또 여전히 나는 책이라는 매개 없이는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꾸준한 글을 쓰지는 못했던 격이다.
최근에서야, 매개 없이 오롯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그리고 꾸준한 두 종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또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일기 - 미래의 나를 위한 일상에 대한 가벼운 기록
하나는 일기이다. 글또의 소모임 #일기써또 덕분에 약 한달 반째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이전까지 일기를 쓴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손꼽히는 암흑기를 보낼 때마다 어김없이 다이어리와 펜을 들었다.
그럴 때의 일기는 기록보다는 감정의 배설에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풀어쓰며 정리되는 것들이 많았다. 독자가 나뿐이라도 어쨌든 글이란 누군가가 읽는 것을 상정하고 쓰기 때문에, 생각을 문장으로 가공해 내기 위해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때문에 괴로움의 감정이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오는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다 똑바로 볼 수 있게 되곤 했다.
한 편으로 괴로울 때가 아니면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그런 깊은 감정과 생각만이 일기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독자가 나뿐인 일기에서마저 유효했던 것이다.
요즈음의 일기는 많이 달라졌다.
퇴사를 하고 난 뒤, 작고 파편적인 기록들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 기록을 남길 당시에는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기를'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없는데 현재의 나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깊이나 길이의 구애 없이, 일단 매일 조금이라도 하루를 기록하기로 했다.
최근의 일상은 드라마틱하지 않기 때문에 막상 일기를 쓸 때는 내용이 너무 얄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너무 단편적인 감상의 나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틀만 지나고 다시 보면 입체적이고 새삼스러운 글로 읽힌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빠르게 잊는다. 일기를 쓰던 때와 지금의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내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고의 범위가 얼마간 넓어진다고 느낀다.
특히 일기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데에 탁월한 효용이 있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존중하면,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후회와 과거의 나에 대한 원망은, 현재의 내가 과거보다 무조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온다. 사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들을 가지고 선택을 했다. 과거의 나도 현재만큼이나 충분히 신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 일기만한 것이 없다. 그 때의 선택들을 이해하게 되고, 지금의 내가 그렇게 현명한 선택들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면 현재의 스스로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이렇듯 요즈음의 내게 일기의 가장 큰 가치는 '나중의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인데, 오늘의 일기가 미래의 어떤 시점의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공들여 쓴 그날의 깊은 생각에 대한 기록이 나중에 봤을 때에는 굉장히 얕아보일 수도 있고, 오늘 있었던 일을 단순 나열만 한 것이 어떤 때의 나에게는 '그렇지, 나는 이런 경험도 했었지', 하는 자극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별 거 없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기록이 나중의 나에게 무언가를 주는 경험이 반복되면, 오히려 일기를 더 가볍게 쓸 수 있게 된다.
특히 나는 일기를 가볍게 쓰기 위해, 손으로 쓴다. 수정할 수 없다는 것, 물리적인 힘과 시간이 든다는 것 - 이 제약들이 오히려 글쓰기를 가볍게 만든다. 잘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많이 고치고 오래 쓰는 것을 하지 못한다. 극심한 터널증후군 덕에 더욱 그렇다.. 일기를 완전한 글로 완성하고자 하는 강박이 차단되고, 쓰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또 손으로 쓴다는 것은 일견 그림을 그리는 경험을 주기도 한다. 내 손이 움직이는 모양 그대로 활자가 그려지기에 자연스레 그날의 내 기분과 상태가 드러난다. 하다못해 손목의 통증 정도라도 말이다.. 종이에 글을 쓸 일이 없는 일상을 오래 지나다가 새롭게 쓰기를 시작한 요즘이라 더더욱, 완벽히 정제된 모양으로 쓰이는 타이핑과는 무척이나 다른 경험임을 느낀다.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적임, 혹은 살아있음의 감각이 손으로 기록하는 것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일기는 분량도 매일 들쑥날쑥이고, 너무 졸려서 못 쓴 날은 다음날 그냥 한두줄 쓸 때도 있다. 어떤 종류이든 글쓰기가 나에게 이렇게 가벼워진 것이 많이 반갑다!
내게 일기를 쓰는 데에 피하고 싶은 유일한 것은, 잘 쓰고자 하는 강박 때문에 펜을 내려놓는 것, 딱 하나이다.
일·공부에 관한 기록 - 결과물 대신 생각, 감정, 배움을 쓰기
글또에 힘입어 쓰기 시작한 글 두번째는, 일이나 공부와 같이 소위 '생산적인 영역'에 대한 기록이다. 이 블로그에 발행하고 있고, 내가 글또에 지원한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다.
퇴사 결심 후 만 3년동안의 회사생활을 돌아보면서, 일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충분치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경험을 정리하면서 슬랙에서의 대화, 피그마의 아이디에이션의 흔적, 미팅 노트와 기획 문서 등을 들춰보았지만, 일을 하면 자연스레 남겨지는 그런 결과물로서의 기록들만으로는 부족했다.
동료들과 첨예하게 대화하며 논의했던 시간, 몇시간씩 정리되지 않던 생각을 종이 위에 끄적이다가 실마리를 잡던 순간, 원온원에서 나눴던 깊은 고민,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에서 울면서 했던 생각.. 이런 것들은 내가 애써 남기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그런데 경험의 알짜배기는 대부분 그렇게 '애써 기록하지 않으면 남겨지지 않는 것'에 있다. 지금의 나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보다,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그 일을 했고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한 것은 과거의 나이고, 그것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 결과물이야말로 바로 현재의 나인 것이다.
때문에 늦게나마 프로젝트나 시기별로의 감정과 생각들을 최대한 톺아보려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 가슴이 뛰며 활력이 넘쳤고, 어떤 시기에 괴로운 마음으로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분명히 있는데, 왜, 어떻게 그러했는지에 대한 것들이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정리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기억들은 오래 지난 시점일수록 희미한데, 대부분 일을 시작한 초반에 성장 곡선이 가파르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이런 아쉬움을 느낄 때즈음 글또를 알게 되었고, 그에 힘입어 생산적인 영역에 대한 글쓰기도 내 일상적인 범주에 넣어보려 한다.
결과물보다 일 혹은 공부의 과정에서의 생각과 배움을 위주로 쓰려 노력할 것이고, 일기만큼 짧은 호흡은 어렵겠지만 특히 꾸준하게 쓰고 싶다. 일기와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강박 때문에 어느 순간 쓰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려 한다.
다만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일기와 다르게 매우 어렵다. 물리적인 시간과 정신적인 에너지 모두 많이 드는 일이다. 일과 공부에 대한 기록은, 일 혹은 공부의 과정 그 자체에서부터 글쓰기에 앞서 글감에 대해 이해를 높이는 것, 글을 읽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구조화하고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나의 글을 세상에 공개하고 발행하는 용기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게 이런 종류의 글은 잘 쓰고 싶은 욕망을 덜어내기 힘들기에 더욱 어렵다. 지금까지 겨우 두 번의 글을 발행했지만, 나는 일에 대해서 쓰는 데에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일은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것이고, 그것을 기록하기로 한 것도 더 유능한 직업인이 되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기에 이런 글을 일상적으로 쓰는 근육을 만드는 데에는 더 많고 오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의 나에게 가장 큰 숙제이고, 글또를 통해서 내가 가장 얻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하고 있는 작은 실천들이 있다.
첫번째, 당분간 모든 글의 주요 독자는 나로 상정한다. 명시적인 독자는 다른 사람일지라도, 글을 발행하기 위해 완성하는 잣대는 나로 한다.
남들이 읽기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내가 읽기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3년 반의 시간동안, 그 전에 취업을 위해 준비하며 공부했던 시간을 합치면 5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나는 나의 생산적인 활동을 공개적으로 기록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단번에 다른 사람들까지 만족시키는 글을 쓰려 하는 것은 욕심이다. 이미 스스로의 글에 대한 잣대가 충분히 높은 것을 알기에, 당분간은 나를 제 1의 독자로 두고 글을 쓸 것이다.
두번째, (글또에 힘입어) 일단 글을 꾸준히 발행한다. 28년간 살아오며 나는 내가 데드라인과 피어 프레셔로 움직이는 사람인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기록에 대한 필요를 느꼈음에도 바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는데, 이제 나에게는 글또가 있다! 약 6개월간 2주에 한번씩, 총 12개의 글을 발행하는 데드라인이 있고, 함께 글을 쓰고 서로 독려하고 감시(?)해주는 600명의 피어들이 있다. 덕분에 내 마음엔 미완의 글이라도 용기내어 한번씩 완결을 짓고 발행하고 있다. 수정하고 발전하는 건 그 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세번째, (글또에 힘입어 222) 글을 꾸준히 쓴다. 발행하는 것과는 별개로 매일 조금씩 쓴다.
놀랍게도 이 글도 일주일간 매일 한 시간씩, 이 문장을 쓰고 있는 마지막 날에는 약 4시간 정도 썼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글을 쓰는 데에 절대적으로 드는 시간이 많게 만든다. 그 욕심을 버릴 수 없다면 매일 조금씩 쓰자. 어떤 종류의 근육도 훈련을 한 번에 오래 하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할 때에 더 잘 길러진다. 글을 써내는 근육도 그렇다. 어제 쓴 글을 오늘 조금 다듬고, 오늘 쓴 글을 내일 칭찬하면서 더 좋은 글을 쓰는 건강한 근육을 기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일과 공부에 대한 글쓰기도 내 일상의 범주 안에 안착하길, 언젠가는 일기만큼이나 나에게 가벼운 것이 되길 - 반년이 지나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나에게 소소히 바람을 전해본다!
'글을써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사이드 프로젝트 출시에 부쳐 (feat. 테블리, 2024 테크블로그 리포트, 포텐데이 412) (1) | 2025.01.05 |
---|---|
스타트업의 QA 프로세스 개선 (1) : 우리 모두가 QA입니다😉 (2) | 2024.11.24 |
사람에 대한 이해 (3) | 2024.10.24 |
SaaS 프로덕트를 만들며 얻은 것들 (0) | 2024.10.12 |
[글또 10기 지원] 내 삶의 지도 (2) | 2024.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