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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이해

움채채 2024. 10. 24. 11:59

"PM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 뭐예요?"

글또 덕에 최근에 많은 개발자분들과 커피챗을 하면서, 거의 매번 'PM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 뭐라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떠오르는 답이 있었는데도 매번 잘 대답해내지 못했는데, 내 생각을 요약할 적확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덕분에 생각을 많이 정리하면서 내린 현재까지의 결론은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프로덕트 매니저(PM)의 업무 영역은 크게 제품을 기획하는 메이커(Maker)와, 제품을 만드는 협업의 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Manager)로 나뉘는데, 내가 사람에 대한 이해가 PM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한 것은 이 두 영역 모두에서 그렇다.

이 글에서는 메이커와 매니저 - 이 두 영역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왜, 어떻게 중요한지를 다루려 한다. 

 

이 글의 주 목적은 내가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해온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함이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 방법론에 대한 정보성 글이 아니다. 무엇보다 왜 이 역량이 중요하다고 느꼈는지에 집중해 썼고, 구체적인 방법은 아니더라도 만 3년동안 일하면서 '최소한 이건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분명히 생각하게 된 것들도 일부 담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 3단계

내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란 크게 다음 세 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이해하려는 자세
2. 잘 이해하기 위한 실천
3. 이해한 내용을 일에 적용하는 것

 

물론 그 순서도, 해야 하는 실천도 서로 무자르듯 나눠지지 않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단계별로 나누어 썼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란 누군가를 잘 이해해서 그것을 일에 녹여내는 것뿐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포함한다는 점을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조하고 싶다.

 

Maker로서의 PM : 사용자를 이해하며 제품 기획하기

메이커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사용자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정의이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바로 세울 때에만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솔루션을 선택할지 뻔한 경우에도, 앞단으로 돌아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바로 세우는 것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그 솔루션이 맞다 하더라도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반드시 구현하는 단계에서 '왜 이걸 하고 있지?'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아니더라도 동료들이 그럴 수 있고 PM은 그런 동료들에게 '왜'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PM들은 문제를 잘 정의하기 위해 다각도로 힘쓰는데, 이 때 사용자에 대한 이해는 '잘하는 문제 정의'에 필수이다. 당연하게도 문제는 사용자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없으면 정의할 문제도 없다. 

 

1. 사용자를 이해하려는 자세

회사에서 처음으로 사용자 인터뷰 다운 인터뷰를 하고 난 뒤 내가 가장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은 이거였다.

 

와, 너무 오만했다.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진심을 다해 필요와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지금껏 진지하게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그들은 항상 소리치고 있었고 우리가 멀리 서 있으면서 그걸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치부해왔구나 느꼈다. 

직접, 제대로 처음으로 진행한 고객 인터뷰 - 살아 있는 문제의 모습을 보았다.

 

사용자를 잘 알아야 한다는 문장은 제품을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당연한 명제로 통하지만, 실제로 그걸 잘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환경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제품을 제일 잘 안다는 착각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을 만드는 데에 몰입한 정도와 시간이 길수록 이런 오만함에 더 잘 빠지게 된다. 

 

아래는 최근 잘 읽고 있는 뉴스레터 다이버시티의 글 '답은 현장에 있다'의 일부이다. (다이버시티를 구독하며 특히 사람에 대한 이해의 관점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이번 글에서 여러 차례 인용하려 한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의 좋은 점만 생각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아이의 모든 것이 너무나 이쁘고 소중한 나머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불편을 겪는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애정을 쏟아 만들다보니 제품은 '내가 제일 잘 아는 내 새끼'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육아예능에서 보듯 내 자식을 내가 제일 모를 때가 더 많다. 심지어 메이커로서 내가 진짜로 아끼고 챙겨야 할 대상은 제품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용자인데, 이 사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면 이렇게나 쉽게 주객이 전도된다.

심지어는 '이걸 왜 이렇게 쓰는 거야?', '의도를 잘못 이해했네' 하며 사용자를 한심하게 여기게 될 때도 있다. 물론 사람이니 감정적으로는 그럴 수야 있지만, 그 감정이 사용자의 목소리를 축소하고 무화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내가 제품에 있어 사용자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이다. 

 

제품을 쓰는 것도, 제품의 쓸모를 가장 잘 아는 것도 사용자이다. 문제는 사용자로부터 오고, 답도 사용자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 당연한 걸 잊지 않으며 일하기란 이다지도 어렵다. 역으로, 이것만 잘 기억해도 반은 성공이다. 세 단계 중 이 1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사용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 뒤의 방법론적인 것들은 동료들이나 다른 기술들에 기댈 수 있다. 하지만 마음가짐이 준비되지 않으면 어떤 실천을 하든 언젠가는 어긋난 선택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에든 내가 사용자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사용자를 잘 이해하기 위한 실천

사용자를 잘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론이 있다. 제품과 조직에 따라 적절한 방식은 모두 다르겠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자를 이해하려 한다면 반드시 다음 두 가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사용자와 직접 이야기한다. 형식이 어떠하든, 사용자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직접 대화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첫 사용자 인터뷰 때의 기억이다. 사실 그 때 고객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아주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전에도 세일즈 팀을 통해서나 슬랙 등의 창구를 통해서 비슷한 내용의 니즈를 전달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이 문제가 그들에게 얼마나 간절하고 중요한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봐온 가공된 정보에서는 느끼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 생생한 감정이 전달될 때 문제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진지해질 수록 문제에 몰입하게 되고, 몰입할 수록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특히 고객도 내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내가 문제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느낀다. 그래서 더 좋은 대답을 주기 위해 문제를 더 파고들고 함께 고민한다. 문제의 당사자와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가 만나 적절한 질문과 양질의 답을 주고 받으며 인사이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정제된 문장과 표현을 보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한다. 성숙한 사고의 과정으로 정리된 글이 더 좋은 인사이트를 줄 때도 많다. 하지만 이건 메이커라면 대부분 잘 챙기는 영역이고, 이것만으로 사용자를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업다운이 있는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표정을 보면서 그들의 진짜 필요를 이해해야 한다. 제품을 가장 잘 쓰고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사용자이지만, 제품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을 가장 잘 하는 것은 메이커인 나여야 한다. 

 

 

 

두번째, 내 제품이 쓰이는(쓰일) 현장에 가본다. 그 현장에 가보면 사용자를 이해하는 범주 자체가 달라진다.

 

제품은 사용자뿐 아니라 그 사용자를 둘러싼 맥락과도 상호작용한다. 사무실에 앉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사용자가 제품을 쓰는 현실 세계를 충분하게 그릴 수 없다.

 

특히 제품을 만드는 데에 몰입하다 보면 UX를 제품 안에서의 경험으로만 정의해버리는 실수를 빈번히 하게 된다.

우리 제품을 쓰는 사용자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용자가 어떤 세상 속에서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떤 모습으로 우리 제품을 접하는지까지 알아야 사용자 중심적 사고이다.

사용자를 서비스 속 익명 개체가 아닌 실제 사람으로 감각하고, 제품과 상호작용하는 실제 터치포인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기 위한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사용자와 내 제품이 만나는 생생한 현장을 보는 것이다. 

 

 

사용자와 대화하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확인할 수 있고, 현장에 가면 사용자를 둘러싼 상황과 그들의 무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제품을 만드는 것은 현실 세계 속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이 감각을 잊지 않으려면 두 가지는 반드시 해야 한다.

 

 

3.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제품에 적용하는 것

하늘 아래 같은 제품은 없기에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제품에 녹여내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일반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제품을 만들든, 2단계를 거쳐 어렵사리 얻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잊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제품 개발에 앞서 사용자 중심적인 가치를 명확히 세워뒀더라도, 제품을 만드는 데에 몰입하다 보면 또다시 '내가 가장 잘 아는 내 새끼'가 되기 십상이다. 또 이후의 프로세스에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변수들이 생기며 사용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에 소홀해질 때도 많다. 

설령 앞단에서 얻은 사용자 인사이트를 제품에 적용하는 우선순위가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계속 고려하면서 의사결정하는 것과 그냥 잊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사용자에 대한 감각을 잊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쪼개어 2단계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사용자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중간중간 울리는 알림을 설정해놓는 것이다.

 

예컨대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다.

현장 리서치 및 사용자 인터뷰 -> 문제 정의 및 가설 세우기 -> 가설 검증을 위한 2차 사용자 인터뷰 -> 상세 기획 및 프로토타입 개발 -> 사용자 테스트 -> 개발 및 QA -> A/B 테스트

 

위와 같이 중간중간 사용자 검증의 단계를 두는 것은 린(Lean)하게 일하는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가설-검증-개선의 이터레이션(Iteration)을 하나의 프로젝트에서도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사용자 검증의 단계를 제대로 된 시스템으로 진행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이상적이다. 사용자를 만나는 모든 방법이 다각도로 많은 품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사용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아래는 앞서 언급한 글 '답은 현장에 있다'의 내용 일부이다.

물어보면 된다.

문제를 푸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기발한 묘수 같은 것을 생각하거나 힘들게 자기 몸을 혹사한다. 마치 그렇게 해야,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하면 되는 것이다.

 

사용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어떤 방식이든 좋다. 거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제품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서 사용자에 대한 감각을 잊지 않을 장치를 곳곳에 넣어두라는 뜻이다. 매 단계가 100% 완벽한 검증이 아닐지라도,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 

 

 

Manager로서의 PM : 함께 일하는 동료를 이해하며 일하기

제품을 만드는 협업의 과정을 관리하는 Manager로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함께 일하는 동료이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괴로웠던 시기에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좀 친절한 방식으로 일하자'였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떤 상황과 감정에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협업하자는 의미였다.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과중한 업무량도, 부족한 성과도 아닌 이런 부분의 부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던 때였다.

한창 마음이 힘들었을 때 개인 블로그에 남겼던 비공개글..ㅎㅎㅎ

 

이런 갈증을 적절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인간미, 친절'이라는 말을 내뱉고 항상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또 그렇게 말하자니 '너무 감상적으로 들리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마음껏 역설하지 못했고, 괜히 다른 기술적인 용어들로 한번 감싸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한다'와 같은 모호한 말로 퉁치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에 책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을 읽으면서 적확한 표현을 찾은 기분이었고, 이렇게 일하는 것이 그저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현명한 방식이라는 것에도 확신을 얻었다. 따라서 이 섹션에서는 이 책의 구절을 많이 인용하려 한다.

p72 내가 겉으로 무슨 행동을 하든, — 나는 두 가지 근원적인 방식 중 하나로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간 자체로, 즉 나와 같은 정당한 욕구와 바람을 가진 존재로 보거나(상자 밖에 있는 상태), 혹은 그렇지 않게 보는 것(상자 안에 있는 상태)입니다.

p79 우리가 업계에서 선도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지고 말하고 대접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 따라 서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모든 관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상자 밖에서 상호주의에 따라 서로 창조적으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상대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이해하며 관계하는 것을 '상자 밖에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대상(object)으로 보는 것을 '상자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일하는 것'이 곧 상자 밖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매니저로서의 PM은 제품을 만드는 협업의 과정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 역량이 더욱 중요한 것일텐데, 내게 동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일하는 것은 PM으로서뿐만이 아닌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가장 가지고 싶은 제 1의 가치이다.

 

책 속의 가상의 회사 재그럼의 오너들은, 상자 밖에 있는 상태로 일하기 위한 전사적인 노력이 회사가 성공한 핵심 요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으로부터 오는데 상자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문제들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느낀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사람 덕분에 힘든 일상을 버티고, 또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일을 그만둔다. 결국 제품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이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것이 많다.

 

 

아래는 책에서 내게 가장 와닿았던 문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자 밖에 있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가장 명확한 답이다. 

이것은 내가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책임'이 만족되는 것이다. 이러한 만족감이 커질수록 당신은 다른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과 당신의 그릇이 커질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상자 밖에서 일할 때 나는 내가 더 좋은 사람, 큰 사람이 된다고 느낀다. 인간으로서도, 직업인으로서도 말이다. 

 

1. 동료를 이해하려는 자세

메이커로서 사용자를 이해하는 데에도 이 1단계, 즉 이해하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썼는데, 매니저의 영역에서 동료를 이해하는 데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상자 밖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p61 위선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법이죠. - 위선은 어떤 효과적인 기술로도 감출 수가 없으니까요

p85 사람들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했느냐보다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존재 방식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반응합니다. 

 

책에서 말하듯, 어떤 유려한 기술로도 마음가짐과 자세는 가릴 수 없다. 함께 일하다 보면 상대가 나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어떤지 다 느껴진다. 이건 생존본능으로서 인간이 타고난 감각이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충분한 존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고, 우리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반응하게 되는 대상도 누군가의 행동이 아닌 마음이다.

 

예컨대 내게 인간적으로 상처를 준 상사가 호의를 베풀면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되고, 그가 하는 말들에서 행간을 읽게 된다. 제품을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에도 바쁜데, 그 사람과 협업할 때면 항상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한다.

반대로 평소에 나를 인간적으로 위해주는 동료가 실수를 하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헐뜯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는 인간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일하는 데에 비효율적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일하는 것은 오히려 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효율적인 방식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개인블로그 비밀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썼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일할 때 '사람이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그만큼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에 집중할 리소스를 실제로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큰 비효율이고 비용 누수 아닌가.

 

 

또 누군가는 회사의 성과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문제시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과가 나고 분위기가 좋아지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수직성장하고 다른 보상들이 크게 채워지면 이 문제가 가려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회사도 제품도 언제나 좋기만 할 수 없다. 반드시 업다운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일하는 것은, 어려운 때를 견뎌내는 지속가능성의 필요조건이다. 힘든 시기에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그 시간을 나야 한다. 일에서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은 다른 요소일지라도, 괴로움을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은 사람이다. 이 토대가 단단하지 않으면, 성장곡선이 꺾일 때 버텨줄 회복탄력성이 약해진다.

 

2. 동료를 잘 이해하기 위해 실천하고  3. 이해한 것을 협업에 적용하는 것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하는 데에 그 마음가짐만큼 중요한 것은 없지만, 이미 그런 태도를 지닌 상태라면 그 역량을 더 유려하게 발휘하는 기술이나 방법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상자 밖에서 일하는 것은 단순히 살가운 말투나 친절한 태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전체 프로세스에 걸쳐 발휘되어야 한다.

동료에게 요구사항을 어떻게 공유하고 이해를 맞출지, 피드백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점에 줄지, 누구에게 어떤 업무를 얼마나 분배할지, 일정을 어떻게 조율할지...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모든 순간과 의사결정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따라서 동료를 잘 이해하고 그 이해를 일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은 일반화하기 힘든, 굉장히 고도화된 영역이다. 그렇기에 리더나 경험이 많은 시니어에게 더욱 요구되는 역량이고, 이는 PM뿐이 아닌 모든 직무의 매니저 레벨에서 그렇다. 

 

아직 매니저의 영역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 PM으로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논하기 어렵기에, 실제 사례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아래 링크의 글은 다이버시티의 필자 김형석님이 똑닥 공동대표이던 당시, 두 명의 시니어와 두 명의 주니어 기획자에게 업무를 어떻게 분배했는지에 대한 글이다. 리더로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하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네 명의 기획자, 누구에게 어떤 업무를 맡기는가.

똑닥에는 네 명의 기획자가 있었다. 시니어2, 주니어2의 구성. 어떻게 업무를 나누어야 할까?

divercity.stibee.com

'중요한 업무를 시니어들에게, 다른 업무들을 주니어들이' 하는 편리한 방식 대신, 각 멤버의 기획자로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적합한 업무를 분배하는 상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필자는 일을 나누는 데에 앞서 각 인원의 단순 경력뿐 아니라 이 사람의 현재 상황과 일 안팎에서의 성향까지 파악한다. 다른 편의 글 '스타트업 컨설팅에서 느낀 것'에서 필자가 평소에 동료들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데, 방식이 특별하지 않다. 역시 동료를 이해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핵심인 것이다.

그 사람이 일을 할 때, 말을 할 때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매니저의 의견을 듣고, 일을 같이 하면서 파악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단서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같이 논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파악한 동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일을 나눈다. 뿐만 아니라 업무를 줄 때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던져줄지, 업무를 하는 동안에 리더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 관여할지도 각 기획자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움직인다. 

 

TMI : 이 뉴스레터를 글또의 소모임에 공유하면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ㅎㅎㅎ

 

필자는 글 말미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같이 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잘 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누구와 같이 일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정체성이 생긴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한 팀이 만들어지고, 일하는 방식이 구체화되고, 마침내 성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이해하며 일하는 것은 감상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이 아닌, 성과를 내는 똑똑한 방식이다. 

 

 

마무리하며

메이커로서 사용자를 이해하며 제품을 만드는 것과, 매니저로서 동료를 이해하며 협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맥락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감정과 정당한 욕구를 가진 살아 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늘 감각에 새기고 일하는 것이다.

 

이 글은 김형석님이 똑닥에 유료 멤버십을 도입하던 당시 동료들-투자사-병원-이용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담은 글인데,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지나고 나면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사람과 그러한 노력을 알아봐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내 제품을 쓰는 것도, 나와 함께 제품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사람이다.

이런 감각을 놓치지 않고 일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이 믿음이 내게 오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